[사진 가작] 꿈의 잔상
꿈의 잔상 백서진(사진영상미디어전공) 우리가 꿈을 꿀 때만큼은 자연스럽고 선명했던 장면들이 눈을 뜨고 꿈을 회상할 때면 마치 복잡한 잔상처럼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꿈의 잔상’을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상명대학교 입학 후 첫 과제전 준비를 하면서 촬영했던 사진으로 상명 학술상에서 수상하게 되어 매우 영광이고, 앞으로 저에게 더욱 의미있는 사진이 될 것 같습니다. 끝으로 작품을 선정해주신 학술상 심사위원분들과 추운 날씨에도 촬영에 응해주신 아버지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사진 입선] 낙막
낙막 남희주 (사진영상미디어전공)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설 부문 심사평
소설 부문 심사평 심사위원 강옥희 교수 (국어교육과)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등 SF적 상상력을 자극하던 소재들이 등장했던 예년에 비해 올해 학술상 소설 부분에 응모한 대부분은 개인적인 삶의 내밀한 편린을 드러내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글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글을 쓰는 일은 개인의 내밀한 욕망과 그것을 해방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예년과 다른 응모자들의 작품에서 볼 수 있었다. 올해 학술상 소설 부분에 응모한 작품들은 총 9편으로 문학적 형상화 등 소설로서 구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작품들을 제외하고「그만두세요」를 가작으로 「포항행 직통열차」를 입선으로 선했다. 「그만두세요」는 달이 지구에 닿기까지 50년, 달리 말하면 지구멸망을 50년 앞둔 지구에서 50년 후 지구의 존재와 그 인류가 성취한 역사의 기록을 알릴 수 있는 방법으로 우주선을 띄우기 위해 데이터를 선별하는 나사 프로젝트에 참석하게 된 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구의 멸망이라는 상상력은 새롭지 않으나 지구멸망에 대비한 프로젝트 이야기와 아버지의 사망 후 마라톤을 시작한 어머니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는 변화와 속도에 대한 성찰이 흥미롭다. 「그만두세요」는 응모작들 가운데 가장 매끄럽게 글을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내가 수행하는 작업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다층적인 의미를 조금 더 명료하게 전달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겨 가작으로 선한다. 「포항행 직통열차」는 열차 안에서 만난 정체모를 여성의 시선을 경험하고 변해가는 다채로운 감정의 변화를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문장이나 형식적 완결성이 아쉬움을 남기지만 분발의 의미에서 입선에 선한다.
[소설 가작] 그만해주세요
그만해주세요 달이 지구를 향해 접근해 온다는 뉴스를 접했을 땐 모두 패닉에 빠졌다. 가장 먼저 알아챈 건 나사였다. 나사는 세계가 혼란에 빠질 것을 우려해 발표하지 않았지만 몇몇 양심 있는 연구원이 나서서 이 사실을 알렸다. 뉴스와 언론들은 일제히 이 충격적인 사건을 보도했다. 연예인의 마약 투여나 만년 꼴찌 팀의 우승 소식은 더이상 뉴스에서 볼 수 없었다. 그 어느 보도에서도 ‘멸’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지만 사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우리가 멸망할 거라는 걸. 발표 후 며칠 동안 세상은 정말 혼돈에 가까웠다. 인터넷의 연결은 전부 끊겼고 한동안은 전기도 쓸 수 없었다. 한전에 근무하는 사람 중 누구도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매일 시끌벅적하던 아파트 단지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도 없었다. 의외로 범죄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로 어제까지 시끌벅적하던 세상이 잠시 조용해졌다. 죽을 때가 되면 사람이 변한다는 할머니 말이 생각났다. 모두 겸허하게 종말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곧 발표는 뒤집혔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정되었다. 당장이라도 달이 지구를 덮칠 것처럼 이야기하던 과학자들은 언론을 통해 당장 멸망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대중들에게 소식이 늦게 전달되긴 했지만, 전기와 인터넷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자 대부분은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연구원들은 처음 지구의 멸망 소식을 알렸던 자리에 다시 서서 말을 꺼냈다. 그들은 자전과 공전, 공간 역학과 코스모스 이론 등의 단어를 써가며 복잡한 사정을 설명했지만, 요지는 이랬다. 달이 지구에 닿기까지는 50년이 걸린다. 달이 지구를 향해 오는 것은 맞지만 그 속력을 발표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달은 시속 1km의 속도로 지구를 향해 다가왔다. 사실 이것보다는 빠른 속도였지만, 지구의 자전과 달의 공전 궤도를 계산하여 직선거리를 구하면 달은 한 시간에 1km씩 지구로 오고 있는 셈이었다. 지구와 달의 거리는 매 순간 달라진다. 평균적으로는 384400km의 거리를 두고 회전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말은 달이 지구로 오는 데 384400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이다. 384400시간은 대략 50년에 가까운 시간이다. 이 발표를 듣고서 들었던 생각은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는 안도감도, 언젠가 죽을 거라는 불안도 아니었다. 그저 뭔가 좀 애매하다는 생각이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스피노자는 생전에 그런 말을 남겼다. 하지만 50년이면 사과나무가 시들어 밑동만 남아도 충분한 시간이다. 사람들은 그 충분한 시간 동안 뭘 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떤 사람은 50년 동안 명상을 하며 진리를 찾을 것이라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이 원했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라 했다. 삶을 포기하고 폐인이 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직장으로 돌아와 평소와 같이 일을 했다. 어머니도 그랬다. 어머니는 다시 훈련에 들어갔다. 어머니는 아마추어 마라톤 선수였다.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 상을 타기도 했다. 그 후로 재미를 붙였는지 한 달에 한 번은 꼭 42.195km를 뛰었다. -속도보다 중요한 건 끈기야. 아마추어 레벨에서는 누가 먼저 그만두나 싸움이거든. 어머니는 매주 마라톤 코스를 뛰었다. 자신만의 연습 코스도 만들었다. 어머니는 아마추어 선수로 인정받을 정도의 실력이 아니었지만, 지역 마라톤 협회에서 등록해 주었다. 35만원과 완주 경력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등록이 가능했다. 어머니는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내심 기뻐하는 눈치였다. 어머니가 처음 마라톤을 시작한 건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유명한 사회 운동가였다. 특히 장애인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 향상에 힘썼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사회 운동을 해서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나와 놀아주었다. 가장 많이 한 것은 텔레파시 놀이였다. 아버지는 침대에 누운 채로 눈을 감고 나는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맞췄다. 놀이를 한번 시작하면 최소 한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가 눈을 뜨고 자신이 보낸 텔레파시를 알아들었는지 물어봐야 게임이 끝났다. 나는 항상 텔레파시를 정확히 맞췄다.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한 시간 동안 떠오르는 단어를 문장에 맞게 조합할 뿐이었다.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머리, 전쟁, 고통, 사망. 전쟁에서 머리에 총을 맞아 고통 끝에 사망하였다. 아버지는 어떻게 알았냐며 나를 천재라고 띄워줬다. 나는 열두 살까지 내가 초능력자인 줄 알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천재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택시 사고로 죽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운동에 참여하는 중이었다. 아버지가 탄 택시는 청각장애인이 운전하는 택시였다. 아버지가 활동하던 ‘전국 장애인 인권증진 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청각장애인 택시 기사가 사고를 낼 확률은 1.2%라고 한다. 그중 사망사고는 0.2%다. 나는 확률로 설명할 수 없는 억울함을 느꼈다. 그 후로 어머니는 마라톤을 연습했다. 첫 번째 코스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이었다. 택시를 타자고 했지만 말릴 수 없었다. 어머니는 집에서 족히 30km 떨어진 장례식장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다. 어머니는 몇 시간 걸려 도착한 장례식장에서 헐떡이며 말했다. -마라톤을 연습해야겠어. 그 후로 어머니는 절대 택시를 타지 않았다. 처음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반대했다. 덕분에 나는 제주도로 가는 수학여행도 가지 못했다. 어머니는 먼 거리를 걸어 다니면 운동도 되고 좋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어머니가 말한 운동과 아버지가 했던 운동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한다. 둘의 경계는 사실 모호하다. 운동 에너지란 움직이는 물체가 갖는 에너지를 뜻한다. 운동 에너지의 크기는 물체의 질량과 속력의 제곱에 비례한다. 운동 에너지를 갖는 물체는 힘을 주는 방향에 따라 필연적으로 그 위치를 바꾼다. 나는 아버지의 운동에 대해 생각했다. 아버지는 사회를 어디로 운동시키려 했을까? 사회의 질량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기 때문에 운동하려면 아마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아버지나 ‘전국 장애인 인권증진 위원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어쩌면 사회는 운동 같은 걸로 움직일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끈기 있게 달리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죽으면 수목장을 해달라고 했다. 수목장은 천이백만 원이었다. 아버지를 경기도 인근 납골당에 모셨다. 뒤에는 꽤 넓은 숲이 있었다. 아버지 유언의 절반은 이룬 것 같아 마음이 한결 편했다. 납골당은 위치 에너지와 같은 이치로 돌아간다. 함이 들어갈 자리가 양지거나 높은 위치일수록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아버지의 자리는 맨 아래였다. 아버지의 유골함을 보려면 몸을 최대한 숙여야 했다. 나는 아버지의 유골을 보는 동시에 인사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달이 지구로 온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 어머니는 훈련 시간을 밤으로 바꿨다. 달을 보면서 훈련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달이 다가오는 게 느껴져요? 어머니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에게 시속 1km는 터무니없이 느린 속도다. 어머니보다 느린 속도로 오는 달은 어머니에겐 큰 위협이 아닐 것이다. -달을 보면서 달리면 내가 달이 된 것처럼 느껴져. 달리다가 힘들 땐, 달과 같은 속도로 걸으면 돼. 그러면 하나도 힘들지 않아.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같은 시간에 존재하는 두 물체가 완벽히 같은 속력으로 운동한다면 둘은 하나의 물체로 간주할 수 있다. 만약 어머니가 달과 같은 속력으로 걷는다면 어머니는 달과 같은 물체이다. 물론 현실에서 달과 같은 속력으로 걷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상에 완벽하게 같은 것은 없다. 나는 아버지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나는 차이가 있었다. 사회 운동가인 아버지와 달리 나는 사회성이 부족했다. 어릴 때부터 낯을 많이 가리고 모르는 사람에게 말도 걸지 못했다. 할머니는 하나가 모자란 사람은 남들이 없는 뭔가를 가지고 있는 거라고 말했다. 과학적인 근거는 하나도 없었지만 어쩐지 믿음이 가는 말이었다. 나는 뭐든 과학의 방식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어렸을 땐 문학을 싫어했다. 문학은 비과학으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내가 나타샤를 너무 사랑해서 눈이 내린다는 내용이다. 그건 말도 안 된다. 눈은 구름 입자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내려올 때 낮은 온도에 의해 빙결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타샤에 대한 사랑은 날씨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 나는 수업 시간마다 이런 오류들을 지적했지만, 친구들과 선생님 모두 나를 이상한 눈으로 봤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늘 혼자 다녔다. 그때는 왜 그런 눈으로 보는지 몰랐다. 지금은 안다. 사회적 요인들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사회적 시선으로 문학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과학의 방식으로 시를 읽는다면 진실이 보인다. 물론 지금은 그 시를 좋아한다. 나는 포트 스트롱의 책에서 비과학의 과학이라는 이론을 배웠다. 포트 스트롱은 과학자이자 건축가였다. 그는 건축 도면을 설계할 때마다 강박적으로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그는 모든 걸 건축 효율성의 측면에서 생각했다. 그래서 커피를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그게 커피포트다. 커피포트는 포트 스트롱이 죽고 난 뒤에야 빛을 봤다. 포트 스트롱은 커피포트를 상용화시킬 마음이 없었다. 그는 커피포트가 완벽한 건축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만 소유하길 원했다. 커피포트를 판 건 그의 유족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커피포트 그 자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커피포트만큼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창조물보다 부족한 창조자로 살아가는 건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커피포트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이 죽으면 커피포트와 같이 묻어달라고 말했지만, 죽기 직전에 그 말을 뒤집었다. -그럴 필요 없겠어. 내가 커피포트니까. 나는 그의 유언이 어떤 시보다 과학적이라고 생각한다. 자신과 커피포트를 동일시한다는 것은 일종의 비과학이지만, 그는 커피포트와 같은 속력으로 운동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머니와 조금 닮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달이 지구를 향한 지 34일이 지났고 지구에 34km 가까워졌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실업률과 자살률이 조금 높아졌지만 유의미한 변동은 아니라고 했다. 사람들도 조금은 냉정해졌다. 50년 동안 마냥 죽음을 기다리기엔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보다 크게 다가왔던 건 내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대책을 강구했다. TV에서는 거의 매일 전문가들의 토론이 생중계되었다. 가장 먼저 나온 의견은 50년 동안 과학을 발전시켜 달을 폭파하자는 의견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영화학도거나 문학도라고 생각했다. 달을 폭파하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다. 달이 없었다면 지구는 진작 멸망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달을 부수는 건 불가능하다. 그보다 현실적인 의견은 속도를 늦추자는 의견과 화성으로 이주하자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50년 동안 그럴만한 기술을 발전시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의견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장되었다. 토론에서는 매일 새로운 의견이 나왔지만, 그중 실현 가능한 것은 없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50년이다. 물론 달이 지구와 충돌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죽어 있을 것이다. 달이 가까워지면 만조 시간이 늘어나 파도가 거세진다. 즉, 지구가 박살나기 전에 이미 인류는 바다에 잠겨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바다에 의해 문명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는 기간을 45년 정도로 예측했다. 그동안 과학의 획기적인 발전을 바란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차라리 겸허하게 죽음을 받아들이자는 의견이 현실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가장 신선했던 주장은 달을 잊어버리자는 의견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우리가 달을 모르는 상태라면 달이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인식론적 관점으로 봤을 때, 우리가 모르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뉴턴이 중력을 발견하기 전까지 우리는 중력이 없는 세상에서 살았다. 세상은 인식에 따라 달라진다. ‘달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가 되면 달이 충돌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황당해 보이지만 나름의 논리는 있었다. 국제사회도 그 주장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그들은 조금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지구가 멸망한다는 사실은 곧 지구를 기억하는 모두가 죽는다는 뜻이다. 지구와 인류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이 죽는다면, 인류는 없었던 존재가 된다. 사람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나사였다. 미국은 지구의 흔적을 우주에 남기기 위해 모든 기술력을 동원할 것을 천명했다.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결정된 사안이었다. 덕분에 대부분 국가의 지원을 약속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사의 계획은 단순했다. 지구의 존재를 알릴 만한 유산이나 기술을 우주선에 실어 태양계 밖으로 멀리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가장 먼저 각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사는 빠르고 광범위한 방식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광고를 전달하고 싶어했다. 유명하고 뛰어난 인재만 골라 포섭할 수도 있었지만, 나사는 획기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새 얼굴을 원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인터넷이었다. 나사는 구글과 결탁했다. 우주로 보낼 인류의 성과 중 하나로 구글을 넣는다는 조건이었다. 나사에서 사람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구글에 돌아다녔다. 하지만 광고는 구글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나사 홈페이지에 연결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사이트로 연결되기도 전에 스팸으로 취급해 광고를 껐다. 나는 컴퓨터가 느려서 인터넷을 켜고 커피를 타는 버릇이 있다. 커피잔을 들고 컴퓨터 앞으로 돌아오자 화면 중앙에 ‘Google’ 대신 ‘NASA’가 적혀있었다. 커피잔을 떨어트릴 뻔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컴퓨터가 느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원방식은 글과 이력서를 써서 보내는 것이었다. 일종의 서면 면접이었다. 주제, 분량, 내용과 언어는 제한이 없었다. 다만 정해진 분야 중 하나를 선택해 그와 관련한 글을 써야 했다. 나사가 제시한 분야는 총 여덟 가지였다. 문화‧예술, 법학, 수학, 과학, 지질학, 역사학, 병리학, 천문학. 기준이 너무 모호하고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 인터넷 상에 있었지만, 전 지구를 통틀어 최고 엘리트들이 제시한 가이드 라인이기에 누구도 불만을 제기할 순 없었다. 나는 과학 분야에 지원했다. 분야별로 몇 명을 뽑는지, 발표는 언제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별 기대도 없었다. 며칠 뒤 연락이 왔다. -11,161,715명의 지원자를 제치고 당신이 뽑혔습니다. 나사가 주최한 프로젝트치고는 의외로 지원자가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해도 내가 뽑힌 건 이상했다. 일개 대학생의 글이 전 세계의 수많은 과학자들을 제쳤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의외였다. 메일을 끝까지 읽고 나서 그런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귀하의 예술적 독창성이 잘 드러난 글을 읽고 마지막 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귀하의 재능을 우리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데 보태줬으면 합니다. 나는 예술 분야 전문가로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는 포트 스트롱의 책과 백석의 시를 통해 비과학의 과학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 글을 제출했다. 설사 내 글이 문학적 글쓰기로 오인되었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의 문인을 제쳤다는 이야기였다. 나사가 과학 집단이기 때문에 예술적 지성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 분야로 뽑혔다고 해서 나사의 제안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거절하는 순간 나는 학교에 복학해 경제학 수업을 들어야 했다. 이제 경제학의 수명은 오십 년이다. 경제학 수업을 듣는 것보다는 인류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나사 측에서 프로젝트 참가자들에 대한 정보 수집이 충분히 되었을 때 상당한 고민을 했다고 한다. 다른 분야의 참가자들은 대부분 각 분야의 전문가였다.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사람도 제법 있었다. 서로의 신분은 알 수 없는 게 원칙이지만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이미 인스타그램에 프로젝트 합격 사실을 올린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 4년제 대학교 재학생은 어울리지 않는다. 나도 알고 있다. 나를 뽑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은 존 루터였다. 프로젝트의 총괄 프로듀서이기도 했다. 그는 내가 이 프로젝트에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애초에 새로운 인물을 뽑으려 진행한 광고였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나는 취지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존 루터가 나를 지지했던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었던 건 한 달 뒤 나사의 호출로 그를 만났을 때였다. 모든 경비는 나사 측에서 부담했다. 자비 부담이 원칙이었지만 나는 특별 케이스라고 했다. 그들도 나의 특별한 주머니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에게는 여행이라고 둘러댔다. 괜히 걱정을 끼치긴 싫었다. 내가 지구의 운명을 건 프로젝트에 참가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머니는 당장 나사 본부가 있는 텍사스까지 달려올지도 모른다. 루터는 나를 회의실로 불러냈다. 회의실 앞엔 ‘Staff Only’라고 적혀있었다. 나도 스태프로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커피를 마시는 중에 당신의 글을 읽었습니다. 루터가 나에게 처음 했던 말은 그랬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는 한참 말을 이어갔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화방식을 종잡을 수 없었다. 갑자기 성을 내다가, 또 양손을 잡고 나를 칭찬했다. 나를 뽑은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커피를 마시던 중에 글에서 커피와 관련된 글이 나오자 나와 뭔가 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와 했던 텔레파시 놀이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존 루터도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그 후로도 루터를 자주 봐야 했다. 그는 우리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렸다. 나사 본부가 있는 휴스턴 근방 호텔에 머물렀다. 서로는 절대 만날 수 없었다. 잠깐 마주치더라도 대화는 금지되었다. 어차피 그들과 대화는 불가능했다.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요일마다 다른 일정이 정해져 있었다. 월요일에는 책을 읽고, 화요일에는 음악을 듣게 했다. 영화를 보거나 잠만 자는 요일도 있었다. 보고 싶은 장르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로맨스 소설, 헤비메탈, SF영화. 루터는 다양한 종류의 예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고 듣고 읽게 했다. 덕분에 나는 고어 영화를 하루에 4편이나 본 적도 있다. 정말 누군가를 죽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경제 수업을 듣는 게 더 인류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게 훈련이라고 했다. -그 정도로 인류의 성취를 모두 파악할 수 있을까요? 루터는 불만을 표하는 참가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인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역사의 기준은 기록이다. 몇백 만년동안 축적된 인류의 기록을 전부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나사의 최종 목표는 우주에 기록을 남기는 것이었다. 나사는 모든 UN 가입국 중에서 뛰어난 사람을 뽑아 우주로 보낼 데이터를 선택하게 하려는 계획이었다. 일곱 개의 분야도 더욱 세밀하게 나뉘었다. 대부분의 참가자는 자신의 지원 분야와 상관없이 훈련에서 드러난 특성을 통해 각 분야에 배정되었다. 소분류까지 합하면 총 47개의 분야였고, 적게는 다섯 많게는 스무 명이 한 분야를 담당했다. 나는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대중예술을 맡았다. 내가 음악과 미술 관련 컨텐츠에 두각을 드러냈다는 게 그들의 평가였다. 작업은 대부분 인터넷으로 이루어졌다. 나사는 참가자들을 모아 미국에서 포럼을 가졌다. 참가자들의 선택에 대한 반발을 우려해 대중에 공개하진 않았다. 하지만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나는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대중적인 예술작품을 고르고 그 이유를 설명한 글을 보내야 했다. 나는 너바나의 노래 「Smells Like Teen Spirit」로 결정했다. 가장 과학적인 작법으로 만들어진 노래라고 생각했다. 「Smells Like Teen Spirit」은 ‘십 대 같은 냄새가 나’로 직역할 수 있다. 나는 그게 락스타의 정신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분류 방법으로는 십 대의 냄새를 정의할 수 없다. 인간은 어릴수록 시각적 이미지보다 후각적 · 청각적 이미지가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대부분 여덟 살부터 감각에 대한 기억력이 발달해 스무 살 정도에 정점을 찍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냄새와 소리까지 생생하게 남는 기억은 대부분 십 대 시절이다. 너바나의 보컬 커트 코베인은 얼굴에 샷 건을 쏴서 자살했다. 자살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이미 치사량의 헤로인을 주입한 후 방아쇠를 당겼다. 돈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여자관계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타살이라는 음모론도 돌았다. 언론에서는 십 대의 우상이 몰락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의 인기는 죽음 이후에도 식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십 대들의 우상이었다. 어쩌면 자신의 머리에 샷 건을 쏘고 싶은 게 십 대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커트 코베인은 죽는 순간까지 락스타였다. -서서히 사라지는 것보단 한 번에 불타는 게 낫지. 유서에는 락스타의 부담감과 무대 뒤에서의 공허함이 조금은 산만한 글씨체로 적혀있었다. 장례식은 그가 주로 머물던 시애틀 근방에서 치러졌다. 장례식에는 의외로 사람이 적었다. 그의 장례식을 찾아오지 않은 건 팬들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Smells Like Teen Spirit」은 아무 의미 없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노래가 나왔을 땐, 평론가들이 음악의 종말을 운운하며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게 치밀한 계산을 통해 나왔다고 믿는다. -안녕. 안녕. 안녕. 제정신이냐? 너바나의 팬들은 가사가 어떤 의미인지 해석하려 애썼지만 그 누구도 시원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평론가들은 내용이 없는 단어의 나열일 뿐이라며 그의 가사를 비판했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너바나의 가사에는 내용 따위 없었다. 그런 건 별 상관없다. 중요한 건 공격적인 가사로 맞춰지는 운율과 리듬감이었다. 이 노래는 시끄럽고 불길하고 기괴하면서 십 대의 냄새가 난다. 노래를 듣게 될 외계인도 그렇지 않을까? 나사는 각국의 인재들이 뽑은 자료들을 수집해 데이터 칩에 내장했다. 실물로 보낼 수 있는 것들은 칩과 함께 우주선에 태우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이삭 줍는 여인들」을 실물로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지만, 보관상의 문제로 사진이 담긴 데이터만 보내는 것으로 결정했다. 우주선이 얼마나 오래 우주를 떠돌지 알 수 없었다. 그동안 그림이 멀쩡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림을 실물로 보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이삭 줍는 여인들」을 선택한 캐나다인 마크 루틀러 씨는 크게 반발했다. 그의 직업은 농부였다. 나는 그가 정말 ‘이삭 줍는 여인들’의 실물을 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왜인지 믿음이 갔다. 데이터는 소형 칩에 들어있었다. 문화, 예술, 역사, 경제, 수학, 철학, 언어 등 인류 문명의 정수만 모아 놓은 것들이었다. 그중에는 내가 고른 것도 있었다. 데이터들에 대한 설명은 영어였고, 그 뒤에 여러 나라 언어의 번역본을 붙였다. 전문 텍스트를 읽어주는 음성 파일도 들어있었다. 선택된 노래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도 있었고 처음 들어본 노래도 있었다. 존 레논의 「Imagine」은 무려 11명이 선택했다. 너무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좋은 노래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유명한 과학 이론이나 난제를 선택한 사람도 있었다. 혹은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미제 사건, 사고를 선택하기도 했다. 인류의 7대 미스터리도 그중 하나였다. 이걸 선택한 사람은 도대체 무슨 분야를 맡은 건지 궁금했다. 나는 미스터리 따위를 우주에 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걸 선택한 사람들은 어쩌면 답을 알고 싶은 게 아니라, 수수께끼가 영원히 풀리지 않기를 바랄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사는 이 프로젝트가 총 20년간 진행된다고 했다. 당장 우주선을 올려보낼 수는 있지만, 어느 궤도로 보낼지, 또 우주선 속 데이터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 등등 아직 결정해야 할 게 많았다. 확실한 건 우주선을 지구에서 최대한 멀리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달과 지구의 충돌은 다른 행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어쩌면 태양계에 영향이 갈지도 모른다. 우주선이 무사히 전달되려면 최대한 멀리 보내는 수 밖에 없었다. 인류 역사상 지구에서 가장 멀어졌던 우주선은 보이저 1호다. 나사는 1977년 경쟁적인 우주선 개발에 힘입어 보이저 1호를 발사했다. 보이저 1호는 41년 동안 약 2억6천만km를 이동했다. 보이저호는 10년 정도 태양계를 머물 것이라는 초기 예상과 달리 여전히 우주를 떠돌고 있다. 지금은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 우주에 있다고 한다. 보이저호에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레코드판이 들어있다. 그 레코드에는 아기 울음소리, 바람 소리, 파도 소리가 녹음되어 있다. -이건 외계인을 위한 선물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건 존 루터였다. 관계자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좋은 이벤트로 생각했다. 실제로 이 프로젝트는 적지 않은 호응을 이끌었다. 하지만 루터는 레코드판이 외계인을 만나길 원했다. 보이저호는 지구가 멸망하는 순간에도 우주를 돌아다닐 것이다. 아니면 이미 외계인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2억6천만km라면 그럴 수 있다. 우주를 떠돈다는 건 마라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주를 달리는 기분은 어떨까요? 어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엄청난 끈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42.195km와 2억6천만km의 차이는 크다. 우주에서도 정말 끈기 있게 달리다 보면 목적지가 나오는지 궁금해졌다. 나사는 참가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었다. 돈은 물론이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도 했다. 마크 루틀러 씨에겐 ‘이삭 줍는 여인들’ 진품을 선물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우주선에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무리한 부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루터는 의외로 흔쾌히 수락했다. 우주에 나의 기록을 남긴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막상 뭘 선택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건 텔레파시였다. 나는 텔레파시를 담은 칩을 우주선에 싣기로 했다. 아버지에게 궁금한 게 있었다. -역시. 루터는 뭔가 통했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단어를 신중히 골랐다. 우주에 텔레파시를 보내는 건 다시 없을 기회였다. 수신자가 아버지일지 외계인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세상, 우리, 정착, 변화. 아버지는 천재이기 때문에 단어를 잘 조합할 것이다. 물론 텔레파시가 아버지에게 도착할 때면 이미 지구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땐 직접 만나서 전달하면 되니까. 프로젝트는 이제 출발점에 섰다. 우주선에 들어갈 데이터를 선별하는 작업은 프로젝트의 초반 단계였다. 중요한 건 우주선의 완성이었다. 외계인을 만날 때까지 안전하게 데이터를 보관하고 있어야 하기에 내구성이 중요했다. 50년이면 충분하다고 루터는 확신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루터는 그 후로도 가끔 메일을 보냈다. 프로젝트 참가자들에게 단체로 보내는 메일인 것 같았다. 대부분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어떨 땐 새로운 아이디어를 묻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제목만 보고 내용은 읽지 않았다. 읽으면 답장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내가 없는 사이에 훈련 강도를 높였다. 본격적으로 대회를 준비했다. 어머니가 준비하는 대회는 제10회 서울국제마라톤대회였다. 전 세계의 아마추어와 프로가 나오는 큰 규모의 대회였다. 성별 제한도 없었다. 어머니의 목표는 십 위 안에 드는 것이었다. 아마추어와 달리 프로의 세계에서 중요한 건 끈기보다 속도였다. 어머니의 평소 기록은 수위권에 들기엔 너무 느렸다. 나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신 있어 보였다. 이재윤 (경제금융학부) 2023년도 열심히 살라는 뜻에서 상을 주신 것 같습니다! 4학년을 앞두고 있는데 소설과 학업 두 분야에서 모두 좋은 성과를 거두고 싶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큰 응원을 받아서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소설 입선] 포항행 직통열차
포항행 직통열차 1 내가 탄 13호차에는 나를 포함하여 총 세 명이 탑승했다. 포항까지 직행이니 그들이 곧 나의 길동무가 될 참이었다. 승차권에는 입석으로 인쇄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나마 편히 앉아있을 만한 자리가 있는지 천천히 살펴보고 있었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띈 남자는 머리가 벗겨져 두피가 훤히 드러난 중년의 아저씨였다. 정장 차림이었지만, 블레이저의 겉면엔 여기저기 실밥이 풀려있어 헤져보였고, 살짝 드러나는 셔츠의 목덜미 부분은 이미 누렇게 찌들어버려 셔츠가 보낸 세월을 짐작케 하였다. 분명 십년 전에는 근사했을 양복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들이 그에게 깔끔함이나 세련됨을 선사하기 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그는 내가 기차에 들어설 때부터 눈길 한번 돌리지 않고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타이핑 중이었다. 나로부터 등을 돌리고 앉아있었기 때문에 내용은 볼 수 없었지만 나 역시 그에게 큰 관심이 없었으므로 그저 야심한 시각에 짬을 내어 밀린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간단히 생각하고 넘어갔다. 남자는 중간 중간 간이 탁자 위에 올려둔 햄버거를 집어먹었는데, 냄새는 퍽 맛있게 났을지 몰라도 게걸스레 씹는 소리는 살짝 메스껍게 들렸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어쨌거나 나에겐 크게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신경이 쓰이는 건 다른 쪽이었다. 나를 마주보는 방향으로 앉은 여자는 아저씨가 앉은 좌석보다 세 자리나 더 뒤에 있었는데, 여자의 얼굴은 나이를 어림짐작하기도 힘든 오묘함을 띄고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그녀가 스무 살이라고 했다면 믿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그녀가 사실은 불혹이라고 정정해주었다 하더라도 아무런 의심 없이 곧이곧대로 믿었을 것이다. 그 얼굴은 왠지 이 세상 사람이 아닌듯한 느낌을 풍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가 신경 쓰였던 진정한 이유는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계속해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었다. 몇 번이나 눈이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눈을 피하기는커녕 마치 오기가 생겨 나와 한판승부를 벌이기라도 하는 듯 더욱 또렷이 쳐다보았다. 한기를 느낀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와 가장 먼 자리를 골라 앉았다. 과연 저 여자의 정체는 무얼까. 귀신일까. 사람일까. 사람이라면 혹시 나를 아는 사람일까. 아니면 단지 내 얼굴에 뭐가 묻은 것일까.(슬쩍 얼굴을 만져보았다. 손에 묻어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있는 방향에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일까. 짧은 시간동안, 피하고 싶은 잔혹한 시선을 마땅히 설명할만한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나의 뇌를 훑고 지나갔지만 신통한 것은 개중 아무것도 없었다. 이윽고 열차는 출발했다. 오후 11시 20분. 예정된 시각이 되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런 심야에는 승객들이 열차를 놓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아니, 애초에 승객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게다가 역에서 거의 한 시간이나 가까이 대기한 후 출발하기 때문에 여간 바보가 아니고서야 놓칠 일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포항을 향하여 출발한 후 아직까지도 정체모를 여자의 시선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나는 그녀와 애써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였다. 이럴 때 책이라도 갖고 왔으면 좋으련만. 텅 빈 가방을 보며 공연히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졌다. 포항역에 도착하게 될 예정 시각은 새벽 3시 30분. 기차의 좋은 점은 웬만해선 시간이 어긋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정신병자의 눈초리를 참는 것도 네 시간이면 족하고, 나로서는 그 시간에 잠이나 청해두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정체가 무엇이건 간에 결국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면 포항으로 향하는 네 시간동안 주구장창 나만 바라보진 못할 것이 자명했다. 한번 마음을 편안히 먹으니 얼어붙으려던 간담이 그렇게 서서히 녹아내려갔다. 2 열차가 출발하고 30분이 지난 후,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시선을 나에게서 차창으로 옮긴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여자의 자리를 엿보니 그녀는 흐리멍덩한 눈길로 덧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방해받지 않고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는데, 여자로선 어디하나 예쁘다고 할 만한 구석이 없었지만 하나의 인간으로선 그럭저럭 봐줄만한 얼굴이었다. 머릿결은 푸석해서 볼품없었고 피부는 창백했으며 입술은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 부르텄지만,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만큼은 어딘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계속 쳐다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큰 눈망울에는 그녀가 무언가 매우 소중한 걸 잃은 듯 슬픔과 분노가 어려져 있었는데,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눈동자에 몇 분씩이나 빠져있자니 순간 옆자리로 가 그녀의 사연을 듣고 싶은 충동마저 일었다. 오랫동안 사랑했던 연인과 이별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가족 중 한사람을 여의고 돌아가는 길일까. 아니면 연락을 받고 직접 장례를 치르러 가는 길일 수도 있겠지. 가족을 잃는다는 건, 내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죽음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경험이다. 소중하다고 할 순 없지만, 분명 가치 있는 경험이긴 했다. 나의 아버지는 평생 도박과 술독에 빠져 지내다가 말년에 그 흔한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자살해버렸다. 스스로 방에 갇혀 모든 창문을 닫고 테이프로 틈을 막아둔 뒤 연탄불을 피워 질식해 죽어버렸는데, 아직도 우리 집 안방엔 그 때의 그 연탄 때문에 방바닥에 눌러 붙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버지가 죽고, 그 이듬해에 나의 어머니 역시 입원해있던 정신병원 병동 안에서 숨겨놓았던 숟가락으로 목을 그어 자살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자살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한 때 도박과 관련된 사업을 운영했었는데, 초반엔 그 사업이 잘 풀려 우리에게 많은 부를 안겨다주었다. 그러나 불법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얼마 안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고,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돈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같이 우리 집 현관을 두드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그들에게 부모님이 안 계신다고 말하곤 했다. 물론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 둘은 언제나 밖에 있었고 집을 지키는 일은 나의 몫이었다. 아마도 그 즈음에 아버지는 도박을 통해 빚을 갚기로 하고, 어머니는 지금껏 본인이 소유하던 수많은 명품들을 더 비싼 값에 팔기 위해 흥정하며 지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안가 우리가 갖고 있던 빚에 아버지의 도박 빚까지 얹어지자 어머니의 정신은 이상해졌다. 한 소설가는 자기의 어머니의 자살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평생을 남편에게 속박당하고, 굴종하며 살아온 당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유의지를 실현시킨 산물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하지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부모의 죽음이 전혀 자랑스럽지 않았다. 그 둘은 평생에 걸쳐 자유의지를 실컷 발휘해가며 살았고, 죽을 때마저도 제 멋대로 떠났기 때문이다. 둘에게 그야말로 가장 잘 어울리는 죽음이었다. 가족과 죽음, 오랜만에 그 두 주제에 대해 사색하다가 문득 내 머릿속에 야릇한 생각이 스쳤다. 저 여자, 혹시 나에게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닐까. 저 여자가 결코 내 취향의 여성상이라고 말할 순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러한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으니 앞서 느꼈던 불편한 시선들이 어느 정도 용서가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경계를 늦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전부터 가지고 있던 그 불안감과 함께 약간의 설렘 또한 싹트게 된 것이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하나. 아니면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고 있어야 하나.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면 도대체 어떤 말을 건네야 하나. 이제 내 머릿속은 30분 전과는 다른 분위기로, 그리고 10분 전과는 또 다른 이유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자에게 먼저 말을 걸기로 한 계획은 철회하는 걸로 내 마음 속에서 결론이 났다. 여자가 내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 나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여자의 첫 인상이 워낙 최악으로 다가왔었기 때문에 그녀를 향한 나의 관심은 호기심의 수준, 그 이상을 넘어가진 않았다. 3 포항으로 출발한지 한 시간 째 접어들면서 설렘은 다시 냉정으로 뒤바뀌었다. 한참을 넋 놓고 그녀를 바라보다 다시 한 번 눈이 마주치고 만 것이다. 이전에 내가 느낀 시선의 불편함을 이번엔 역으로 그녀가 느꼈는지 불현듯 차창에서 나에게로 다시 눈길을 돌린 듯 했다. 또다시 시작된 여자의 적의어린 눈빛 덕분에 나는 생각을 고쳐먹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령 그녀가 첫눈에 나에게 이성적 매력을 느꼈다 하여도 십중팔구는 부끄러움에 힐끗 쳐다보는 것에서 끝이 나지, 저런 식으로 뚫어지게 응시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저 눈빛은 호감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다. 저건 ‘살의’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고 나니, 나는 다시 몹시 불안해졌다. 결과적으로 저 여자의 정체가 첫 만남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미친 듯이 궁금해졌다. 정신병자일까. 아니면 향간에 떠들썩한 무차별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인가. 최근 전국적으로 같은 수법의 살인이 벌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연일 쏟아지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역과 범행 장소가 매우 다양해서 경찰이 수사에 애를 먹고 있다고 하였다. 자칫 개별적인 사건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는 그 많은 범행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살인 방식이었다. 피해자들은 모두 복부에 여덟 군데 자상, 목에 세 군데 자상, 그리고 왼쪽 가슴에 십자가 문양의 칼로 그어진 자국이 있었다. 경찰은 열세 구의 시신이 훼손된 부분의 공통점을 인지하고 이 사건들을 연쇄살인으로 규정지었다. 13명을 죽였다. 그것도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국토를 횡단하며 죽이고 다닌 것이다. 마치 사람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살육 기계와도 같은 행적이었다. 그녀가 만약 그 주인공이라면 많은 것들이 설명이 되었다. 내가 그녀에게 이상함을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그 중 하나는 그녀가 이용하는 승객이 거의 없는 이 야간열차를 택한 점이다. 누군가는 그게 뭐가 이상하냐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이 시간에 서울에서 포항으로 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군다나 이렇게 저급하고 느려터진 열차를 예매하는 사람은 더욱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차를 선택했다면, 분명 급하게 출장이 잡혔다는 등의 사정이 생겨 시간에 맞는 열차를 찾다보니 어쩔 수 없이 타게 된 경우이거나 저렴하게 가기위해 탑승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집안에 일이 생겨 온 가족이 포항을 가야할 일이 생겼는데, 마땅히 운전을 할 사람이 없어서 그나마 싼 이 야간열차를 선택할 경우도 적은 확률이지만 존재하긴 하였다. 이러나저러나 가족 단위가 아닌 이상, 직장인일 수밖에 없다. 내 알량한 지식으로는 그 정도의 경우밖에 추릴 수 없었다. 그러나 둘 중 어느 경우도 그 흔한 가방하나 소지하지 않은 그녀의 차림새를 설명해주진 못하였다. 그리고 가장 이상한 점은 낯선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쏘아대는 바로 저 눈빛이다. 저 눈빛에 담긴 분노는 도대체 왜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이며 그 분노를 과연 내가 어떻게 해소해줄 수 있는가. 그 해소법이 그저 나의 죽음만은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굳이 살인이 아니라도 좋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해코지하기 위한 목적으로서라도 이 기차는 더할 나위없는 최적의 장소였다. 분명 그녀는 이 열차에 타 사냥감을 찾고 있었을 것이고, 그런 와중에 내가 눈에 딱 포착된 것이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만약 그녀가 내가 예상했던 대로 사이코패스이고 살인광이며 나를 다음 사냥감으로 침 발라 놓은 것이라면, 나는 저항해야 할 것이다. 나약한 영양이 표범의 송곳니를 뿌리치듯 도망가야 할 것이고, 그 도망이 실패한다면 그녀의 급소를 노려 처절히 싸워야 할 것이다. 우선, 내가 처한 상황에서 과연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환경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주변을 서둘러 둘러보았다. 같은 칸에 있는 또 다른 사람이었던 대머리 아저씨는 이미 십분 전부터 자기 자리와 그 옆 좌석을 침대삼아 곯아떨어진 상태였다. 그렇다고 다른 칸에 사람들이 얼마나 앉아있는지도 나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승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할까도 고민했지만, 내가 탄 기차는 열악하고 구닥다리인데다 야간열차였기 때문에 기껏 승무원이라 해봤자 기차를 운행하는 기관사밖에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가장 큰 걸림돌이 하나 남아있었는데,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선 어찌되었든 내가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여자 쪽에서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모를 노릇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하염없이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살인마가 나를 죽이러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사형수와 다를 바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쪽에서 먼저 죽으러 가고 싶진 않았다. 죽음의 공포가 내 속에서 생명이라도 얻은 듯 빠르게 구체화 되었다. 나는 너무나도 두려웠기 때문에 이전처럼 직접적으로 그녀를 쳐다볼 순 없었지만, 계속해서 나를 향해 쏘아지고 있는 살기쯤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그녀는 계속해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저 주머니 안에는 칼이나 송곳 같은 무기가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끔찍한 도구로 지금껏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사냥했겠지.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이 나를 휘감아 저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4 출발한 지 두 시간 째, 그녀가 나를 노려본지 한 시간 째 들어서자 나의 심장은 극도의 불안감과 흥분감이 뒤섞여 마구 요동치고 있었다. 박동 소리는 철륜 소리를 뚫고 멀리 있는 저 살인마의 귀에 닿기라도 할 것처럼 매우 크게 들렸다. 불현듯 나는 내 몸을 지킬 무기의 필요성을 느껴 급히 가방을 뒤졌다. 여벌옷과 짧은 밧줄, 가위와 청색 테이프가 들어있었고, 가방 맨 앞주머니엔 노트 몇 권과 필통이 들어있었다. 무기가 될 마땅한 것들이 없어 처음엔 실망하였지만, 이내 필통 안에서 작은 사무용 커터칼을 찾아 꺼냈다. 나는 계획을 세우기로 하였다. 우선 각자 열차의 끝자리, 대각선 방향으로 앉아있었기 때문에 살인마와 나의 거리는 꽤 먼 편이었다. 기차 한 칸의 거리, 좌석으로 따지자면 우리 사이의 15줄의 좌석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탄 열차는 13호차. 기관사와 가장 먼 열차였다. 승무원이 있다한들 과연 둘러보러 올지도 확신할 수 없는 돼지의 꼬리와도 같은 위치였다. 내가 앉은 자리 뒤로는 남자 화장실이 있었다. 그녀의 뒤로는 여자 화장실이 있었다. 그러니, 여자가 내 쪽으로 온다는 것은 필시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다. 나는 나에게로의 접근을 공격시도로 간주하기로 마음먹었다. 살인마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면, 그녀가 공격하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를 쳐야했다. 그런 이유로 칼의 날은 빼놓은 채로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놓았다. 우선 목을 세 번 그을 것이다. 날이 얇아 부러질 확률이 높기 때문에 날을 세워 찍는 공격은 가급적이면 피해야한다. 여자가 쓰러지면 그 틈을 타서 다시 나를 공격할 수 없도록 밧줄로 그녀의 몸을 칭칭 감아 묶을 것이다. 그리고 테이프를 찢어 그녀의 입을 막아야겠지. 괜히 아저씨가 잠에서 깬다면 내가 공격하는 중간부터 상황을 보게 될 터이니, 오해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테이프를 마저 찢어 두 눈에 붙일 것이다. 그 눈. 세 시간동안 나를 괴롭혔던 그 빌어먹을 두 눈까지 막고 나면 이제 그녀가 다시 공격할 수 있는 모든 위험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 때, 나는 내리는 것이다. 누구에게 알릴 필요 없이. 혹여나 살인마가 살아남아 내 정보를 알기라도 한다면 곤란하다. 여기까지가 내가 믿고 있는 생존의 정확한 매뉴얼이었다. 5 실행으로 옮길 기회가 찾아왔다. 그녀가 일어섰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벗어나 천천히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다가오는 동안 내 몸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나는 오른손을 재킷 왼쪽 안주머니에 넣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그래서 서둘러 오른 손을 제 위치로 옮겼다. 만약 공격이 실패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막상 거사의 순간이 다가오니,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하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결국 성공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더해져 나는 내 손안에 있는 칼을 더욱 꼭 쥐었다. “저기요.” 품에서 칼을 꺼내려던 찰나에 그녀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나를 불러, 뒤에 이어지려던 내 행동은 순간 갈피를 잃고 멈춰버렸다. 그녀는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손을 자세히 보니 말보로 레드 담배 한 갑이 쥐어져 있었다. 뚜껑이라 할 만한 부분이 찢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내가 피우던 담배였다. 담배를 든 그녀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까 지나가시다가 떨어뜨리신 것 같아서 주워서 돌려드리려는데, 그 쪽이 너...” 그녀는 무언가 생각난 듯, 더 말을 하려다 도중에 멈춘 뒤 담배를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이내 잰걸음으로 황급히 원래 앉아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여자는 살인마다. 앞서 일어났던 그녀의 일련의 행동으로 인해 내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나는 분명 담배를 떨어뜨린 적이 없다. 담배는 내 뒷주머니에 들어있었다. 실수로 떨어뜨릴 순 없는 위치이지만, 뒤에 있는 누군가가 슬쩍 빼가기에는 아주 좋은 위치이기도 했다. 그녀가 참으로 주도면밀하다고 생각했다. 어찌되었든, 그녀는 처음엔 나를 죽이기 위해 접근을 했을 것이고, 본인을 기다리고 있던 나의 자세와 결의에 찬 내 분위기에 짓눌려 움츠러든 것이 분명했다. 우선 위기는 가까스로 넘긴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제 다시 공격해올지 모르니 완전히 경계를 풀 순 없는 노릇이었다. 자리로 돌아간 여자는 나에게 오기 전과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나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나의 조그마한 빈틈이라도 어떻게든 찾아서 파고들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더더욱 긴장의 고삐를 바로 잡을 수밖에 없었다. 6 기차가 종착역에 다다를수록, 나는 나의 근심이 계속해서 가벼워지는 것을 쉽게 체감할 수 있었다. 마치 포항역이 내 행복의 기준점이라도 된 듯, 나의 감정 상태는 그렇게 내가 탄 열차와 함께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침내 기차는 고대하던 포항역에 도착하였다. 출발시각은 그토록 정확했음에도, 어째서인지 도착한 시각은 예정보다 37분이나 늦어졌다. 나는 누군가 나의 행동지침을 내려주기라도 한 듯, 너무도 당연하게 여자가 하차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기차에서 내렸을 때, 그녀는 이미 출구 쪽을 향해 나보다 십 미터 정도 앞서가 있었다. 만족스러운 안전거리라 생각하고는 그 거리를 유지하며 그녀의 뒤를 밟았다. 출구 쪽에 다다르자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나를 한번 홱 돌아보더니 부리나케 달려 도망갔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젠 완전히 안전해진 것이다. 다섯 시간 가까이 굳었던 온 몸의 힘이 풀리자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주저앉았다. 오늘도 나는 죽을 뻔 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모르겠다. 나호성 (전기공학전공) 작품을 읽을 때마다 수정해도 부족한 부분이 계속 튀어나와 처음엔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입선 연락을 받은 지금은 누군가 제 작품을 읽어주시고 알아봐 주셨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행복하게 다가옵니다. 이 행복함과 감사함이 훗날 제 글쓰기 여정에서 위대한 첫걸음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평론 부문 심사평
평론 부문 심사평 정의진 교수(프랑스어권지역학전공) 올해 상명 학술상 평론 부문 당선작은 <겨울에서 여름을 상상하기-카코포니의 <숨의 여름> 무대 평론>이다. 카코포니는 일반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음악인은 아니다. 그러나 매 곡 매 앨범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확고한 문제의식과 실험적인 음악 형식, 혼신의 힘을 다하는 무대 퍼포먼스와 독창적인 창법, 다양한 스타일의 뮤직비디오 등으로 대중음악계의 평론가들과 동료 음악인들에게는 높은 평가를 받는 음악인이다. 이 평론은 이러한 카코포니의 음악 세계와 무대를 차분한 논지와 정돈된 문장으로 비교적 잘 분석하고 정리하였다. 다른 응모작들에 비해 문장과 논리 전개의 수준이 분명히 한 수 위였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비유적인 시적 문장들이 다소 과잉되게 사용되어서 논지 전개와 적절하게 어우러지지 못한 부분들도 있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가작인 <황금은 색이 바래지 않는다>는,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 수감 되었던 유대계 폴란드인 피아니스트 슈펠만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피아니스트>에 대한 평론이다. 영화에서 들을 수 있는 쇼팽의 ‘발라드 no.1’이 불러일으키는 감흥과 그 의미, 나아가 홀로코스트의 현장 한가운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하여 이 평론은 설득력 있는 논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평론과 사적인 감상문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문장과 표현들, 이 영화의 감독이 로만 폴란스키라는 가장 기본적인 참조 사항도 제시하지 않은 점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입선 <식문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본인이 5년 동안 직접 경험한 식문화 체험을 바탕으로, 상권의 급격한 변화, 오미카세의 확장, 특정인 추천 맛집을 최근 식문화 변화의 핵심 요소로 제시하고 있다. 재미있고 유용한 글이었다. 그러나 평론 대상과 일정한 분석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사적 체험과 감정의 즉자적인 서술이 일부 있다. 좀 더 적확한 어휘와 개념을 선택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투고작 전체를 놓고 보면, 자주 비문들이 발견되는 경우, 맞춤법과 문장부호 및 띄어쓰기 등 가장 기본적인 사항을 소홀히 하는 경우들도 눈에 띈다. 평론을 포함하여, 특히 공적으로 제출하거나 응모하는 모든 글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사항에 대한 점검과 확인이 필수적이며, 이러한 습관과 태도가 더 나은 결과의 전제조건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평론 당선] 겨울에서 여름을 상상하기 - 카코포니의 <숨의 여름> 무대 평론
겨울에서 여름을 상상하기 - 카코포니의 <숨의 여름> 무대 평론 참고할 수 있는 팜플렛.pdf (링크 이동) 카코포니 <숨의 여름> 무대 (링크 이동) 이찬영 (국어교육과) 멋진 아티스트가 근사한 공연을 준비해주신 덕분입니다. 좋은 예술이 마땅한 자리와 언어를 얻으면 좋겠습니다. 뮤지션 카코포니의 음악이 많은 분에게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평론 가작] 황금은 색이 바래지 않는다
황금은 색이 바래지 않는다. 당신은 쇼팽의 음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클래식을 별로 들어보지 않아서 쇼팽이 무슨 곡을 썼는지, 그 곡들이 어떤 멜로디를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지만, 쇼팽이 쓴 곡들을 들어보면 ‘아, 이 곡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이 그렇듯이 안 들어봤을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하니까 말이다. 이번 글에서 다룰 영화 피아니스트에서는 주로 쇼팽의 곡이 나오는데, 쇼팽의 곡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낭만’이다. 쇼팽의 발라드, 야상곡. 그것들은 언제 들어도 마음을 두둥실 떠오르게 해주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곡들이다. 하지만, 그런 쇼팽의 곡이 자주 등장하는 이 영화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어둡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이 겪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보여주는데, 그 이야기들은 참으로 암울한 비극이다. 영화는 슈필만이 라디오에서 라이브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쇼팽의 야상곡을 아름답게 연주하고 있는 녹음실에 어울리지 않는 굉음이 들리고, 라디오 녹음실의 창문이 부서진다. 집으로 대피한 슈필만이 본 것은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하는 뉴스였다. 그 이후로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이 유대인 탄압을 시작한다. 유대인인 슈필만은 그 탄압을 피해 이곳저곳으로 도망치며 살아간다. 영화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내용은 이것이다. 그 내용은 마치 ‘안네의 일기’ 같았다. 같은 시기에 나치 치하에 있던 유럽 국가들에서 일어난 내용이다 보니 이런 유사점이 생길 수밖에 없구나 생각하면서 보게 된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유대인이고,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홀로코스트에 대한 내용도 나오는데, 특이하게도 이 영화는 보통의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와 다르게 나치는 가해자, 유대인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정리를 하지 않는다. 같이 잘 지내다가 나치에게 유대인을 팔아 넘기는 사람들, 같은 유대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유대인들. 나치가 존재하는 이상 약자의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이용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인간적이라고 하면 인간적이고, 잔혹한 현실이라고 하면 잔혹한 현실. 그 모습은 마치 우리가 한국사 시간에 배우는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았다. 영화 대부분의 내용은 슈필만이 나치를 피해 도망치는 장면으로 구성된다. 이것만 보면 이 영화는 음악영화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음악이 나오는 부분이 손에 꼽아도 될 정도로 적고, 그나마 음악이 나오는 부분은 슈필만이나 그의 동료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음악영화라기보단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인물들에게 쉽게 이입할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음악단이 흥겨운 음악을 연주한다. 독일인 병사는 그 음악을 웃고, 손뼉을 치며 즐겁게 듣고 있다. 병사는 흥이 돋았는지 출근하기 위해 나와있던 유대인들을 잡아서 끌고 나와 춤을 추게 시킨다. 춤이란 보통, 흥겨운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춤을 춰야 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삐쩍 말라 병들었고, 그들에게 춤을 시킨 독일인 병사의 표정에만 흥겨움이 가득하다. 결국 엉성한 자세로 춤을 추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넘어진다. 그 사람은 목발을 짚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흥겨운 음악은 계속해서 흐르고, 독일인 병사는 아직도 즐거워한다. 그 밝고 어두움의 대비가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저런 장면이 현실에도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지금껏 봐왔던 어떠한 공포영화보다도 공포스러웠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영화는 막바지로 향한다. 슈필만의 처지는 처음 모습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말끔한 양복을 입고 따듯한 라디오 녹음실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그는 게토의 폐허 속에서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씻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해가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안전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며 나치를 피해 다닐 수 있던 영화의 초중반부 상황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슈필만은 우연히 발견한 통조림을 까먹으려다 그것을 떨어트리고, 마침 그 앞을 지나던 독일군 장교에 의해 발견된다. 그 장교는 보통의 나치 군인들과 다르게 유대인인 슈필만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하던 사람이냐고. 슈필만은 답했다. 피아니스트라고. 그렇다면 피아노를 연주해보라고 독일군 장교는 말한다. 그렇게 슈필만은 인생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연주를 시작하게 된다. 나는 그 연주 장면을 보고 이 영화의 모든 것들이 그 하나의 연주 장면을 위해 존재했다는 것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포탄과 총알로 엉망이 된 폐허 속 운 좋게 살아남은 피아노를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던 피아니스트가 연주한다. 그가 연주한 것은 다름 아닌 폴란드의 천재 피아니스트 쇼팽이 작곡한 ‘쇼팽 발라드 no.1’. 추위에 손을 벌벌 떨면서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안고 있으면서도 슈필만은 폴란드의 선율을 연주한 것이다. 그의 생사를 쥐고 있는 사람은 독일인. 살아남고 싶었다면 베토벤과 바흐 같은 유명한 독일인 작곡가들의 음악을 연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슈필만은 쇼팽을 연주했다. 그의 영혼만큼은 독일에게 굴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형장에 끌려가면서도 독립을 외쳤던 독립운동가들이 이러한 느낌이었을까. 슈필만의 혼을 담은 쇼팽 연주는 폐허를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메워갔다. 그 연주를 들으며 음악이 세대를 초월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유럽인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니며,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대도 아니다. 하지만 영화에 나타나는 슈필만의 쇼팽 발라드 연주를 들으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어째서일까? 눈물이 나오는 이유는 대체 왜일까? 연주가 귀가 아닌 영혼에 울리는 느낌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음악이 연주된다는 것은, 그 연주되는 상황이, 그 연주자의 혼이 보고 듣는 이에게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 아닐까. 슈필만의 연주를 들은 장교는 그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몰래 지원해준다. 그 덕에 슈필만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고, 전쟁이 끝난 뒤 피아니스트로서 피아노를 다시 연주하는 장면을 비춰준 뒤 영화는 끝난다. 나는 영화를 본 뒤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선이란 무엇이고, 악이란 무엇일까. 전쟁이라는 것은 인간성을 어떻게 훼손하고, 그런 비참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우리는 인간성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철학적인 생각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런 생각 끝에 나온 결론은 단순했다. “아름다움을 잊지 말자.” 슈필만이 겪었던 일을 생각해보자. 인간성의 상실된 공간, 서로의 미간에 총구를 들이밀던 시기에 그는 수없이 꺾여버렸을지도 모른다. 음악이 가진 감정들, 연주로 만들어내는 행복. 자신이 살아오면서 마주했던 아름다움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시기에는 그게 정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켜냈고, 그 덕에 목숨마저 건질 수 있었지 않은가. 요즘, 혐오의 시대라 불리는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 우리는 계속해서 악한 감정들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럴 때 비틀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방법은 간단하다. 열매를 맺어내기 위해서는 씨앗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도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면 색이 바래지 않는 황금처럼, 마음속에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품고 있어야 한다. 그 아름다움은 우리가 앞으로 어떤 상황과 마주하더라도 그것을 이겨낼 힘을 줄 것이다. 이지훈 (문헌정보학과) 가작에 당선되었다는 문자가 와서 정말 놀랐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선물 같았죠. 곧 크리스마스라 이런 기쁜 일이 찾아온 것일까요?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평론 입선] 식문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식문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먹는 존재'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의식주 중에서 '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고, 누구나 어디서든지 '먹는 것'을 접할 수가 있다. 집에서도 바깥에서도 먹는 생활은 이어진다. 매번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한다. 밥을 먹을지, 빵을 먹을지, 면을 먹을지, 어떻게 조리할 것인지, 혼자서 먹을 것인지, 친구와 함께 먹을 것인지, 잘 보이고 싶은 사람과 함께 먹을 것인지까지도. 나는 매 끼니 밖에서 어떻게 먹을 지를 고민하는 것은 일종의 기획 과정이었다. 이 기획은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기획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흥미롭다. 흥미로운 일의 연속이고, 내가 '먹는 것' 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서울 생활과 이 관심사는 동일선상에 놓여있다. 상명대에 오자마자 입사한 기숙사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아 외식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삼각김밥과 컵라면이 물리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옮겨 학교 근처의 업장들을 모두 방문하게 되자, 바깥 상권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세검정을 벗어나 부암동으로 가고, 부암동의 업장을 다 가보고 나면 서촌, 그리고 광화문까지 나아갔다. 이 과정에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는 먹는 것에 사용하는 비용, 즉 식비일 것이다. 미각의 기억이 누적되기 시작할수록 음식의 양보다는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들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배를 채우는 것보다는 더욱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했고, 그만큼 식비를 더 쓰기 시작했다. 돈을 쓴 만큼 달라지는 맛이 신기해, 자극을 받고 더욱 돈을 쓰는 순환이 이어졌다. 내가 먹은 것들이 성취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먹는 존재로써, 이렇게 식비를 쓰는 생활을 5년동안 해오면서, 식문화가 어떻게 변화하는 지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상권의 급격한 변화, 오마카세의 발달, 특정인이 추천하는 맛집이다. ‘상권’은 늘 바뀌고 변화하지만 그 중심에는 명동, 홍대, 강남과 같은 전통적인 상권이 남아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코로나 전후로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을지로, 성수, 용산. 이 곳들은 모두 전통적인 상권인 명동, 홍대, 이태원의 특징에서 벗어난 ‘신흥상권’으로 분류되며, 상권에서 근무하는 인구들이 상권 내에서 소비하는 내수가 강한 곳이다. 이 상권들은 상업부지의 개발과 겹쳐지며 특정 업장의 새로운 시도로 외부인들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상권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을지로의 기존 소규모 공장들과 ‘신도시’, 성수의 지식산업센터와 ‘대림창고’, ‘어니언’, 용산의 아모레퍼시픽과 ‘효뜨’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을지로의 '신도시'는 상가는 1층이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버린 곳이다. 공장이 즐비한 골목의 건물 5층에 자리를 잡고 을지로 인근에서 온갖 폐기물을 가져와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꾸며냈다. 성수의 '대림창고'와 '어니언'은 기존의 폐공장 건물을 인수해 건물 본연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살리고, 교외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대형 카페를 그대로 서울 도심에 갖다놓았다. 용산의 '효뜨'는 기존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를 먹던 곳에서 타협 없이 이국적인 음식과 공간을 그대로 배치해, 가게 안에 들어서면 마치 해외에 온 듯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 이러한 업장들을 방문하기 위해 유입된 외부인들은 상권의 내부인들과 자연스레 섞인다. 자연스레 상권의 소비시장이 커지기 시작한다. 이를 따라 외부에서 새로운 업장들이 들어오고, 유사한 시도를 하는 업장들이 유입되기 시작하며 특색을 띈 상권으로 발전하는 순환을 보이고 있다. 상권이 발달함에 따라 새로 생겨나는 업장들은 가게가 생길 당시의 상황과 인식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렇게 반영되고 생겨난 변화는 '오마카세'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마카세’는 미식가나 상류층들만 가는 사치스러운 일식당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로 자영업자들은 전환세를 맞는다. 자영업, 그 중에서도 음식들을 취급하는 업장들은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에 감염 될 위험성을 감수할 만큼 특별한 것이 없는 가게, 즉 줄을 서는 ‘맛집’이 아닌 이상, 발길을 끊는 손님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폐업을 했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불확실성이란 요소가 커졌다. 자영업자의 입장에서는 불확실성보다는 예측할 수 있는 확실성을 선호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오마카세'는 바로 이 확실성을 제공할 수 있는 형식이다. 예약과 코스로 구성된 요리를 내주는 시스템을 통해 이윤을 계산하고 측정할 수 있다. 자영업자들은 이러한 장점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생겨난 새로운 '오마카세' 업장들은 기존의 고가 일식 오마카세와는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일식에 머무르지 않고 한우, 파스타, 야키토리, 튀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업장들이 오마카세의 형식을 차용해오기 시작했다. 또한, 5만원대부터 많게는 20만원대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가격대의 업장이 생겨나 그 가격에 맞는 합당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인식을 받기 시작주고 있다. '어딘가에 다녀왔으며, 어떠한 음식을 먹고 SNS에는 차마 다 담기지 못하는 수많은 -사진들과 함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오마카세'의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이로 인해 '오마카세'는 특정한 음식을 판매하는 곳이 아닌 새로운 영업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음식을 공급하는 이는 오마카세와 같은 형식을 차용하며 확실성을 얻고자 한다. 마찬가지로 음식을 소비하는 이들도 확실성을 선호한다. 확실성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정보를 수집함으로써 검증 된 곳에 방문하고자 한다. 그러나 코로나, 상권의 변화와 함께 업장들은 사라지고 빠르게 생겨나고 있다. 기존의 TV 프로그램에서 접하는 맛집, 부모님이나 선배가 데려가는 곳과는 다르게 최근에 생겨난 수많은 업장들은 리뷰가 없거나 적은 곳이 대다수이다. 이러한 곳들은 소비자들에게 불확실성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업장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최전선에 나선다. 불확실성을 선뜻 소비하며 그 속에서 좋은 곳을 발굴해낸다. 매체를 통하여 발굴해낸 곳을 소비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소비자들은 이들을 통하여 확실성을 얻고 방문한다. 이곳에서 얻은 경험이 만족스러웠을 경우, 이들이 올린 정보를 신뢰도가 높다고 인식한다. ‘최자로드’, ‘성시경의 먹을텐데’, ‘이영자 맛집’, ‘맛타고라스’, ‘비터팬’, ‘푸딘코’, ‘또간집’과 같은 인플루언서들을 주축으로 한, 특정인이 추천하는 맛집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따라 자신도 방문했다며 인증샷을 올리고 경험을 전시한다. 이로 인해 인플루언서들이 제공한 가이드라인은 더욱 빠르게 전파되고, 더욱 큰 영향력을 가진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간접적인 경험을 반드시 하게 된다. 상권을 산책하다 눈에 띄는 줄이 길게 늘어선 맛집, 친구가 SNS에 올린 오마카세 후기, 유튜브에서 유명인이 혼자 맛집에서 소주를 마시는 영상. 수많은 간접적인 경험들은 방문해서 먹어보고 싶다는 직접적인 욕망을 자극한다. 먹고자 하는 욕구는 의, 식, 주 중 제일 접근하기 쉬워 방문으로 빠르게 연결되고, 반응이 즉각적으로 드러나며, 변화에 반응이 즉각적으로 반영된다. 그렇기에, 식문화는 다른 문화보다 더욱 역동적으로 변화할 수 밖에 없고, 그 변화를 지금에 들어서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는 '식비'일 것이다. 그 식비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식비와 선택지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살아가면서 모든 것에 비용을 지불한다. 그 비용에 얼마를 지불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지는 너무나도 다양하다. 바깥에서 먹는 식사도 예외는 아니다. 바깥에서 사먹는 음식들의 원가는 35%을 넘지 않는 것이 외식경영에서는 정석이라고 말한다. 이 원가율은 메뉴에 들어간 식재료의 원가를 포함하고, 그 외의 부대비용을 제외한 15%의 순이익을 얻는 것이 평균적인 비용 책정법이다. 부대비용은 여러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진다. 월세, 인건비, 관리비, 부가세, 잡비와 같은 부대비용들이 한 메뉴의 가격에 반영되어 다양한 가격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어느 길거리에나 식당들이 있다. 직장인들이 많은 오피스 상권의 몇천 원짜리 백반집, 분식집의 삼천 원짜리 라면과 김밥, 적당한 가격에 일정한 퀄리티를 보장하는 프랜차이즈들, 약속을 잡거나 놀러갈 때 먹는 만 원에서 이만 원어치 음식을 파는 식당들을 길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런 길목에, 오마카세 형식의 식당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형식을 가진 식당들은 적게는 수만 원부터 많게는 수십만 원까지, 다양한 가격대를 자랑하지만 여전히 선뜻 한 끼로 선택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왜 그렇게까지 비싼 음식을 먹는 사치를 부려? 그 당시의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하면 기껏해야 술을 포함해 삼사만 원 내외로 지출하고, 좀 비싸게 먹었네? 라는 생각을 하던 사람이었다. 한 끼로 먹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임에도 매달 새롭게 생겨나는 오마카세 업장들과 파인다이닝에 왜 그렇게까지 열광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순히 SNS에 올리기 좋은 걸까? 그렇다면 왜 굳이 방문을 할까? 라는 생각을 품은 채로 외면해왔다. 그러나 먹는 관심사가 같은 지인들의 추천을 계속 접하게 되었다. 결국 한 번쯤은 경험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고 머지 않아 제주도에 위치한 한 오마카세 식당을 방문하게 되었다. 제주도의 특색이 있는 재료를 이용한 사시미와 스시가 나오는 코스, 요리사와 직원의 깔끔한 접객, 진중하게 요리를 즐기는 손님들. 불편하거나 실망스러운 점도 없이 하나하나 빠질 게 없는 식사였고, 셰프님과 장장 2시간에 걸쳐 소통하는 과정을 거치며 많은 지식과 경험을 얻었고, 인당 14만원이라는 비용이 아깝지 않았다는 생각을 품은 채로 식당을 나섰다. 일정한 식비 내에서 가성비에만 집중하고 정보를 찾아보고 찾아간 맛집이 실패했던 경험에 질려있던 나에게는 큰 변화였다. 2만 원짜리 파스타를 10번 먹었다면 그 중에서 맛없는 파스타를 먹을 확률은 얼마일까? 이런 파스타를 10번 먹고 내가 만드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하거나, 음식에 문제가 생겨 컴플레인을 거는 경험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마카세나 다이닝은 블로그만 찾아보아도 코스 하나하나 사진을 촬영하고 감상을 써놓은 후기가 즐비하다. 이 후기를 접함으로써 다양한 음식을 접할 수 있으며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특별한 경험을 얻고 싶어하고, 안전성까지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타인들에게는 기꺼이 과해보일 수 있는 식비를 투자하고, 특별한 기념일이나 다양한 경험을 얻고자 하는 날에 오마카세나 다이닝을 방문하는 것이 여러 번 다른 식당을 방문하는 것보다 오히려 가성비가 좋고 합당한 소비가 아닐까.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비슷한 형식의 식당이 늘어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변하는 상황, 식비를 겨냥한 긴축재정 그렇게 비싼 곳을 방문하는 것도 오히려 가성비가 좋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 경험에 중독이 되기 시작했다. 오마카세를 방문하면 할수록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만 같았다. 새로운 경험을 얻으려 한 단계 높은 오마카세를 방문하거나 파인 다이닝을 가기 위해 돈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병에 20만원 하는 와인을 6명이랑 나누어 두 잔을 먹은 날이었다. '좀 맛있는 거 먹어봤네' 라는 생각을 하고선 집에 돌아와 가계부를 보기 시작했다. 내 수입에 걸맞지 않게 한 끼에 과다한 지출을 하고, 그 지출을 해도 그리 큰 감흥을 얻지 않는 내가 보였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 당시, 외식 시장은 크게 상황이 달라지고 있었다. 즐겨찾던 단골 술집은 몇천 원씩 안주를 올리기 시작했다. 유튜브에 무지출 챌린지가 눈에 띄게 보이기 시작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월세는 자연스럽게 오르고 있었고, 식량난으로 인하여 식용유, 밀 같은 재료값이 급격히 올랐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재료비는 더욱 상승에 박차를 가하고, 인건비도 덩달아 올라갔다. 자원난으로 인하여 전기세, 가스비도 올라버린다. 근본적인 것들이 올랐으니, 이 가격들을 반영해야하는 외식비도 오를 수밖에 없는 악순환을 체감했다. 사람들은 요즘 들어 식비가 “증가했다”고 인식하고,[1] 대학생들은 식비를 생활비 중에서 제일 많이 지출하고 있다고 말하며 지출을 줄일 경우 가장 먼저 식비 및 외식비를 줄이겠다고 대답하고 있었다.[2] 과하게 사용하는 식비에 회의감을 품고 있었던 나도 그에 속했다. 운동을 시작하던 때와 맞물려 식단을 해나가며 본능적으로 식비를 줄이기 시작했다. 달에 두 번 꼴로 방문하던 다이닝을 가지 않고, 약속을 제외하고는 바깥에서 외식을 하지 않는 생활방식으로 바꾸어나갔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밥솥에 전원을 켜고 노브랜드에서 육천 원짜리 1kg 냉동 닭가슴살을 사왔다. 즐겨 찾던 가게의 사장님들에게 왜 요즘 안 오시냐는 아쉬운 소리를 들으며, 일주일 동안 식비에 아무 것도 쓰지 않기도 했다. 밥 100g을 재서 먹고, 닭가슴살 150g을 김치와 곁들여 먹으며 식비를 줄이는 생활을 지속해나갔다. 이렇게 식비를 줄이며 식단을 하는 생활을 하다보면, 내가 과거에 겪은 경험이 저 멀리 아득하게 남아있고 그 생활을 포기해버린 것만 같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들이 헛되거나 무의미한 경험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가 쓸 수 있는 재정 내에서 식사를 하고, 시장에서 이천 원짜리 부추를 사와 그간 먹으러 다녔던 경험들을 떠올리며 어떻게 더 맛있게 요리해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부추무침, 마제소바와 같은 다양한 요리를 해 먹는 일도 즐겁다. 그렇기에 운동의 목적인 체중감량을 달성한 후에도 여전히 이런 식단과 외식을 병행하는 방식을 이어오고 있다. 그럼에도 경험을 하고 판단해야 한다 자신의 현실적인 재정을 알고 있고, 넉넉함에도 라면 하나를 세 끼에 나누어 먹는 극단적인 무지출 챌린지를 하는 것은 궁상, 재정에 맞지 않게 무리해서 오마카세나 다이닝을 가는 것은 허세라고 타인들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자기 자신이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이루어진 결실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금액 내 안에서 그렇게 행동을 하는 것이니까. 한 끼에 이십만 원짜리 식사를 해보기도 했고, 일주일 내내 식비에 돈을 쓰지 않은 적도 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식비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이든 그 나름의 경험을 얻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니 누군가 궁상이나 허세라고 하건 모든 경험을 해보아야 한다. 누구나 식비를 극단적으로 줄이려 시도해보고, 누구나 다이닝을 한 번쯤 시도해 보아야 한다. 단순히 며칠째 무지출이라는 글자를 보며 위안을 얻는 것보다는 한 번의 비싼 식사에서 얻는 종합적인 경험이 원동력이 될 수 있고, 늘상 먹던 좋은 식사보다 극단적으로 식비를 줄이면서 한 번 먹은 외식 한 끼가 큰 위안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해보았던 사람은 식문화 어디에서든지 미식을 찾을 수 있고, 먹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미식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한 번에 삼십만 원짜리 오마카세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삼천 원짜리 김밥을 여러 가게에서 사먹으며, 어떤 김밥집이 제일 맛있는지 아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 기저에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되, 그 경험에서 자신이 즐거웠던 것을 선택하는 것에 달려있다. [1] 심동준, "코로나가 바꾼 '청년 의·식·주'…옷값 줄고 식비 늘었다", 뉴시스, 2021. 01. 11.,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210108_0001298677 (접속일: 2022. 10. 08.) [2] "대학생 월 평균 생활비 59만2천원, 5년전보다 약 22만원↑", 잡코리아, 2020. 12. 03., https://www.jobkorea.co.kr/goodjob/tip/view?News_No=18436 (접속일 2022.10.08.) 전지영(조형예술학과) 먹으러 다니며 느낀 점들을 써보았는데 이렇게 공유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모두들 맛있는 거 드세요!
시 부문 심사평
시 부문 심사평 최미숙 교수 (국어교육과) 올해 응모작의 창작 경향은 최근 몇 년 동안 보여준 경향에 비해 매우 다양해졌다. 일상, 사랑, 청춘, 이별, 슬픔, 죽음, 영원 등을 중심으로 삶에 대한 진지한 사유와 성찰을 담은 시가 풍부해졌다.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 보는 시가 많아졌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그런데 소재가 다양해지고 사유의 깊이도 깊어졌지만 그것을 시적 언어로 함축성 있게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아쉬움을 보여주는 시가 많았다. 이 점은 앞으로도 ‘시’ 부문 응모에서 중요한 과제로 남을 것이다. 당선작으로는 <선광사2>를 선정했다. 절제의 미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슬픔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지만 직접 토로하지 않고 거리를 두면서 응시하고 있다. 이 시가 택한 슬픔을 견뎌내는 방식이다. 간결하면서도 응축된 표현을 통해 ‘슬픔의 견딤’에 독자도 함께하도록 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화자의 바람대로 “수억 광년” 떨어져 있는 우주와 지구의 거리만큼 슬픔도 멀어지면서 작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가작으로 <할아버지>를 선정했다. 이 시 역시 슬픔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그것은 할아버지에 대한 따뜻한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던, “쓸모없는 것을 사랑”하던, “선량한” ‘할아버지’를 향한 화자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면서 깊은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다만, 할아버지에 대한 감정이나 정서를 좀 더 응축시켜 표현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부분이 향상된다면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볼 수 있을 듯하다. 입선으로 선정된 <10월 4일, 2022년>은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행간 걸림’의 사용, 호흡의 단속을 조절하는 문장 부호의 활용, 시행 배치의 변화를 통한 리듬의 변주 등 세련된 표현 방식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다만, 시가 드러내고자 하는 세계에 대해 좀 더 심도 있는 사유를 담는다면 훨씬 더 좋은 작품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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